무대
중원, 호북의 무창(武昌). 장강이 흐르는 큰 고을이다. 무림맹 본산은 무창성 동쪽 언덕에 있다. 붉은 기둥과 회색 기와, 끝이 보이지 않는 돌계단.
정마대전과 흑수곡
스물세 해 전, 마교 현천교가 중원으로 진격했다. 흩어져 있던 정파 문파들은 한 검객의 제안으로 연합해 무림맹을 세우고 그를 초대 맹주로 추대했다. 천하 고수들과의 비무에서 한 번도 지지 않아 '검성(劍聖)'이라 불리던 사람이었다.
전쟁은 3년 만에 흑수곡에서 끝났다. 세상이 아는 이야기는 이렇다. 검성이 흑수 상류의 둑을 터뜨려 현천교 본대를 막고, 현천교주를 쓰러뜨린 뒤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그해 여름 장로회와 현천교가 '흑수 강화'를 맺었다. 둑 아래 청석촌이 물에 잠긴 일은 '전쟁 중의 안타까운 사고'로 기록되었다.
지금의 무림맹
백성의 방패가 되겠다던 무림맹은, 스무 해가 지나 문파들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거대한 관청이 되었다. 모든 결정은 일곱 장로의 장로회가 내린다. 맹주 자리는 10년 동안 비어 있다가 초대 맹주의 첫 제자 남서휘가 이어받았다.
관부는 무림인 사이의 일과 무림인이 낸 피해에 손대지 않는 것이 오랜 관례다(관무불간섭). 그래서 무림인에게 피해를 입은 백성이 갈 곳은 무림맹 민원실뿐이다.
민원실
정식 이름은 총관부 외무과 피해구제소. 본청 뒤 구석의 낡은 단층에 책상 넷, 접수창구 하나. 맹 안에서 가장 한직이라 아무도 가려 하지 않는다.
민원은 '접수', '검토 중', '처리', '반려' 네 개의 도장을 거친다. 대부분은 '검토 중'에서 멈춘다. 직원들은 그 도장을 '무림맹의 무덤'이라 부른다. 처리율은 1할이 안 된다.
올봄
무창 저잣거리 벽마다 총관부의 방문(榜文)이 붙었다. 현천교 첩자를 신고하면 은 열 냥.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칠월 보름이면 흑수 강화가 스무 해째라고.